오! 소소한 뒷얘기 - 자기소개서

수정 | 삭제

아키버드의 정규 2집 [오!소소] 앨범에 관한 뒷얘기.

여덟번째 수록곡인 [자기소개서]는
DJ Magik Cool J와 정우가 곡의 구성과 코드진행, 멜로디를 만들고
도대체 작가님(줄여서 도작가)이 가사를 붙인 다음
멤버 다 같이 편곡하며 제 모습을 갖췄습니다.

정규 2집의 제목인 [오!소소] 역시 도작가의 아이디어입니다.
소소한 일상을 담았다는 음반의 정서도 전달할 수 있고
[오소소]라는 부사어가 주는 애틋함도 마음에 들었는데
거기에 느낌표를 더해서 [오!소소]라는 근사한 제목이 탄생했습니다.

[자기소개서]의 초기 스케치를 들어볼까요.
>> Aquibird_-_Oh_So_So_Epilogue_05.mp3

정식 녹음 전까지 여러 가지 가사를 붙여봤는데
도작가가 제일 처음에 붙여주신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샌드위치 피크닉]

친구들 함께 소풍 가는 날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서
어제 사 놓은 재료들을 꺼내 샌드위치를 만들어
어떤 모양이 좋을까? 한 입 크기로?
너무 큼직하면 예쁘게 못 먹겠지?

못생긴 건 동생 주고 예쁜 것만 잘 골라서 담아야지
놀라는 네 얼굴 보며 '이 정도쯤야' 해야지
고마우면 다음 주말 또 만나자고 해야지
다음 번엔 둘이만

제일 귀여운 피크닉 바구니에 샌드위칠 담아야지
어떤 멘트가 좋을까? '내 정성이야'?
너무 애교 떨면 제대로 못 먹겠지?

맛없는 건 언니 주고 맛난 것만 잘 골라서 담아야지
네가 잔뜩 감탄하면 '이 정도쯤야' 해야지
보답은 됐고 다음 주말 또 만나자고 해야지
다음엔 꼭 우리만

혹시 너무 맛있어서 네가 기절하면
평생을 하루에 한 번씩 기절하게 만들어 줄 생각도 있다고

못생긴 건 동생 주고 예쁜 것만 담아야지
놀라는 네 얼굴 보며 '이 정도쯤야' 해야지
고마우면 다음 주말 또 만나자고 해야지

다음 번엔 둘이서만 만나자고 말해야지
오늘은 꼭 말해야지 다음 번에 만날 때엔
너랑 나랑 둘이서만 만나자고 말해야지



위 가사는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감성인 것 같은데
[오!소소]의 화자는 20대 중반 여성이라고 우리들끼리 정해두었기 때문에
정서적 공감대가 일치하지 않더군요.

그래서, 도작가에게 수정을 부탁드렸고
그렇게 써주신 두번째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말할 필요 없잖아]

예쁜 도시락 준비하는 법은
미리 찾아 놨지만
그대로 따라 만들었는데도
왠지 부족하기만 해

아무리 보고 또 봐도 난 모르겠어
네가 좋아할까 맛있게 먹어 줄까
솔직하게 얘기해서 이런 거 다 처음 만들어 보지만
그래도 나 너에게는 그렇다고 말 안 할래

사실대로 고백하면 모든 게 다 처음이지만
말할 필요 없잖아
약속 시간은 자꾸 다가오는데
달라진 건 하나 없어

나만 믿고 나오라고 괜히 말했나
이제 와 어쩌지 빵이나 사 갈까
솔직하게 얘기해서 이런 거 다 처음 만들어 보지만
그래도 나 너에게는 그렇다고 말 안 할래

사실대로 고백하면 모든 게 다 처음이지만
말할 필요 없잖아
어쩌면 넌 이런 내 맘 다 알고서
모른 척 넘어가 줄 수도 있겠지
그런 거라면 계속 눈감아 줄래?

솔직하게 얘기해서 이런 거 다 처음이지만
그래도 나 너에게는 그렇다고 말 안 할래
사실대로 고백하면 모든 게 다 처음이지만
너는 그걸 모르잖아 말할 필요는 없잖아

솔직하게 얘기해서 이런 거 다 처음이지만



두번째 가사는 공감 가는 내용이였지만
발음하기가 어려워서 멜로디와 잘 안 붙더군요.

염치 불구하고 도작가에게 다시 한번 수정을 부탁드렸고
세번째 가사에는 도시락이 아닌 자기소개서로 주제와 소재가 변경되었습니다.
앨범에 실린 최종적인 가사와 편곡은 다음과 같습니다.
>> Aquibird_-_Oh_So_So_Epilogue_06.mp3

아키버드의 가사는 신선하거나 선동적이지는 못하지만
(그래서 홍대스럽지 못하지만)
우리들끼리는 몇 가지 원칙을 세워두었습니다.

1. 무의미한 영어 가사 혼용은 하지 말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영어, 한글 가사 혼용이라면 반대하지 않지만
   부지런하지 못한. 습관적인 창작의 결과물로서의 한영 혼용 가사는 반대.

   즉, "오늘 밤 Tonight, Baby, You Know 널 사랑해"는
   결코 아름다운 가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 그리고, 한글로 가사 잘 쓰고 나서
   대뜸 영어로 제목 짓는 것도 참 멋 없다는 입장입니다.

2. 생활어를 사용하되 한자어의 사용을 줄이자.

   일상의 언어로 가사를 짓되
   한자어는 되도록 줄이는 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구어체가 되어도 곤란하고 너무 문어체가 되어도 곤란한데
   한자어의 경우 노래 가사로 쓰면 바로 알아듣기 힘든 경우가 많아서
   생활어를 쓰면서도 최대한 한자어를 쓰지 않고 가사를 쓰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별, 상념, 추억' 같은 명사보다는
   '헤어지는, 어지러운, 떠오르는' 같은 동사, 형용사를 선호합니다.

3. 그림이 그려지는 가사를 쓰자.

   들으면 머릿 속에 밑그림이 그려질 수 있는 가사를 쓰고 싶었습니다.
   예컨데, 불꺼진 방,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볕이 좋은 산책길처럼.
   그리고, 청자가 그 밑그림에 채색을 할 수 있도록
   적당한 선에서 가사의 여백을 남겨놓으려고 노력했습니다.



Aquibird - 자기소개서

Lyrics by 도대체
Composed by DJ Magik Cool J and 임정우
Arranged by DJ Magik Cool J and 임정우

Vocals        유연
Chorus        DJ Magik Cool J, 임정우
Guitars       임정우
Programming   DJ Magik Cool J
Bass          최국진
Percussions   김바투

하루 또 하루 자꾸 지나가도
나는 매일이 그대로
그동안 계속 꾸준히 해온 건
나이 먹는 거 하나 뿐야

맨날 라디오 듣다가 밤을 새우고
자고 일어나면 다시 저녁이래

솔직하게 얘기해서 내 모습이 싫은 것도 아니지만
누구나 다 꿈꿔 오던 그 모습도 아닌 거야
사실대로 고백하면 꿈이 뭔지도 잘 몰라
이런 얘길 해도 될까

오늘 밤에도 할 일은 없는데
왜인지 잠들기는 싫어
인터넷 쇼핑몰마다 돌아다니며
사지도 못할 옷 잔뜩 담아 놓고

솔직하게 얘기해서 내 모습이 싫은 것도 아니지만
누구나 다 꿈꿔 오던 그 모습도 아닌 거야
사실대로 고백하면 꿈이 뭔지도 잘 몰라
나의 자기소개서

만약에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한다면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솔직하게 얘기해서 내 모습 싫진 않지만
누구나 다 꿈꿔 오던 그 모습도 아닌 거야
사실대로 고백하면 꿈이 뭔지도 잘 몰라
이런 얘길 해도 될까

솔직하게 얘기해서 내 모습이 싫은 것도 아니지만
누구나 다 꿈꿔 오던 그 모습도 아닌 거야
사실대로 고백하면 꿈이 뭔지도 잘 몰라
나의 자기소개서

by Aquibird | 2012/03/01 22:00 | Diary | 트랙백 | 덧글(5)

트랙백 주소 : http://aquibird.net/tb/2847802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마빗 at 2012/03/08 18:10
아키버드 음악을 구매하여 잘 듣고 있습니다.
제작과정이 흥미롭네요.
제 블로그에서도 조만간 소개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꾸준하시길..
Commented by Aquibird at 2012/03/09 02:20
감사합니다. 소개글도 기대됩니다!
Commented by 12살 영어소녀 at 2012/03/25 20:01
안녕하세요 좋은 정보 감ㅅ가 드립니다. 많은 도움이 될거예요.
덕분에 시험을 90점 받음니다. 감사해요
Commented by Arctell at 2012/06/05 19:35
우와. 초기버전 가사는 완전 다른내용이었었네요 ㅋㅋ

자기소개서는 노래도 노래대로 너무좋지만 가사가 마음을 찌르는!! 매력이 있어요 ㅠㅠ 너무너무 공감.
Commented by Aquibird at 2012/06/16 16:31
감사합니다! 여러번 가사 수정한 보람이 있군요!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